오늘의 책 03.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요약
“줄곧 나는 기다렸네
살짝 젖은
아스팔트의, 이
여름 냄새를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라네”
책 첫 장을 열면, 마치 저자(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사인을 직접 받은 것마냥 위 내용이 친필로 적혀있다.
이 시는 1945년 여름,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한 기쁨을 노래하는 시인 다비드의 시이다.
지은이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이 수필은 대학교, 교수, 학생들로 구성되는데 결국 인생이라는 큰 범위에서 보면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들이다.
크게 일상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영화에서, 대화에서 이렇게 5부로 나눠 구성했다.
저자가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추려 짧게 적은 진한 에스프레소와 같은 글이다. 블랙코미디를 좋아한다면 이 분의 글을 좋아할 것이다.
오독(誤讀)이 두렵다는 에필로그로 마무리되지만, 그가 말한대로다. 독자만이 글에서 읽고 싶은 것을 읽어내는 특권이 있다.
읽고나서
저자는 단순히 개인의 삶 뿐 아니라 역사와 정책, 정치 사회의 편린을 통해 바라본 삶도 다룬다.
질주와 성장만을 좇느라 놓치고 스친 대한민국의 조각들 속 삶이라든지, 정치적 편향의 틀에 갇혀 성장하는 삶이라든지.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물리적 죽음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상의 죽음, 아집의 죽음, 철학의 죽음 또는 과오의 죽음일 수도 있다.
내 고통이 제일 극악무도하고, 내 아픔이 가장 날카로우며, 내 슬픔이 최고로 어둡고 축축하다고 여겨질 때 이 책에서 덤덤하고 가볍게 던져주는 이야기들을 떠올려보면 좋다.
너도, 나도 결국 똑같이 유약한 인간이라고. 네 고통이 내 고통보다 잔악하지 않고 네 아픔이 내 아픔보다 특출나지 않다고.
그 구간을 지나면 그것들보다 크고 거대한 너의 기쁨, 너의 행복, 너의 웃음이 있다고.
“안녕(安寧)하세요?” 할 때의 그 안녕은 편안할 안, 편안할 녕자를 합친 한자어다.
우리는 매일보는 사람에게도,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안녕을 묻는다.
잦은 전쟁, 기아, 자연재해, 호환마마 등을 간밤에 이겨내고 편안한지를 살피는 배려깊은 인삿말이다.
우리네 문화는 오래 전부터 은연 중에 간밤에 죽어간 자들과 죽음 그 자체와,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사색을 품은 인삿말로 살아온 것이다.
이 책은 동료가 오래전 선물해준 책인데, 두고두고 읽고 있다.
저자가 쓴 칼럼을 좋아하는 걸 보고 선물해준 것 같기는 하지만, 60살이 되면 죽고싶다던 내게 이 책을 선물해준 동료는 무슨 생각이었을런지.
그때 생각한 60살이란 ‘삶에 여한이 없고 그 어떤 미련도 없지만 질병도 고통도 크게 없을 나이’였다.
그때 말한 죽음은 ‘물리적 죽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단 한톨도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여전히 아직 건강할 때 내 의지로 죽고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60살의 내가 생각보다 건강(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하다면, 조금 더 살아도 좋겠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도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